사람이 쓴 글
제안요청서에서 '아직 안 정해진 것'을 다루는 법
예산도 기간도 미정인 상태에서 RFP를 써야 할 때, 빈칸을 어떻게 남겨야 문서가 성립하는지.
무엇이 어려운가
제안요청서를 쓰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대개 아직 안 정해진 것이 정해진 것보다 많습니다. 예산은 부서 협의 중이고, 사업 기간은 예산이 나와야 정해지고, 컨소시엄 허용 여부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.
이 상태로 AI에게 맡기면 미정인 것이 정해진 것처럼 채워집니다. '총 사업비 2억 원 이내', '계약일로부터 6개월' 같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데, 그 숫자의 출처는 없습니다. 문서를 받은 사람은 그것이 확정값인지 예시인지 알 수 없고, 그대로 공고가 나가면 그 숫자가 사실이 됩니다.
항목마다 확정 상태를 표기하게 한다
해법은 빈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빈칸에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. 항목마다 셋 중 하나를 달게 합니다.
- CONFIRMED — 확정된 값. 근거가 있습니다
- PROVISIONAL — 잠정값. 검토 중이며 바뀔 수 있습니다
- [입력 필요] — 아직 없는 값. 여기에 더해 무엇으로 채우는지 한 줄을 같이 답니다
세 번째의 '무엇으로 채우는지'가 실무에서 가장 유용합니다. [입력 필요: 총 사업비]만 있으면 누가 언제 채울지 아무도 모르지만, '예산부서 확정 후 기재'가 붙어 있으면 그것이 곧 할 일 목록이 됩니다.
이렇게 적습니다
예산이랑 컨소시엄 허용 여부는 아직 미정이야. 추측해서 채우지 말고 미정 항목으로 표시한 다음, 각각 무엇으로 채우는지 한 줄씩 달아줘.
법령은 이름만 지목하고 해석하지 않게 한다
공공 발주라면 국가계약법이, 미국이라면 FAR이 걸릴 수 있습니다. 그런데 AI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게 하면 안 됩니다 — 조문 해석을 지어내는 것이 이 문서에서 가장 위험한 실패입니다.
요청에 이렇게 적습니다: 어느 규정이 걸릴 수 있는지 이름으로 지목하고, 적용 여부는 담당 부서에 확인하도록 표시해줘. 그러면 문서가 '이 조항에 따르면…'이 아니라 '국가계약법 적용 여부 확인 필요'로 나옵니다. 후자가 맞습니다.
직접 쓸 때의 체크리스트
- 1확정된 값과 미정인 값을 요청에서 먼저 갈랐는가
- 2미정인 것을 '추측해서 채우지 마'라고 명시했는가
- 3빈칸마다 '무엇으로 채우는지'를 요구했는가
- 4법령을 해석하지 말고 이름만 지목하라고 적었는가
- 5발주 주체가 공공인지 민간인지 밝혔는가 — 이것 하나로 문서 구조가 바뀝니다
읽었으면 직접 해 보는 편이 빠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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